
2026년 1월 18일은 연중 제2주일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에 들어서는 주일입니다.
이번 주 서울주보는 요한 복음의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선포를 중심으로,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을 드러내시고(계시), 우리는 그 은총을 받아 세상에 증언하는 사람으로 부름받았음을 차분히 되새기게 합니다. 또한 청소년 곁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교육’, 이름을 불러 주며 연대를 시작하는 JPIC의 시선, 그리고 교회와 미술이 함께 걸어온 역사까지—신앙이 머물지 않고 밖으로 흐르도록 이끌어 줍니다.
1. 생명의 말씀 –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상훈 유스티노 신부, 홍보위원회)
이번 주 복음(요한 1,29-34)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 증언하는 장면입니다. 주보는 요한 복음이 예수님의 세례 사건을 ‘직접 묘사’하기보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 안에서 소개한다는 점을 짚으며, 하느님의 계시가 늘 하느님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먼저 다가오시고 하느님께서 알려 주시며, 그 계시를 받은 이는 다시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이 흐름은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과도 자연스럽게 만납니다. ‘누가 더 옳은가’의 경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받은 빛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겸손히 화해와 대화를 촉진하는 증언자가 되라는 초대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2. 말씀의 이삭 – 「내 마음의 사춘기를 끝낸 다섯 글자, ‘자원봉사자’」
(강애경 율리안나, 청소년 지도사)
강애경 율리안나는 중·고등학교 사목 현장에서 교육 자원봉사를 시작하며 겪은 ‘마음의 변화’를 고백합니다. 처음엔 딸아이의 사춘기가 두려워 시작했지만, 학교 현장에서 마주한 거친 언어와 소란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을 판단하고 선을 긋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전환점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성 요한 보스코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아이들 안의 ‘보석 같은 가치’를 보기 시작하자,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먼저 자라고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로 시선이 확장됩니다. 작은 정성과 시간이 아이들에게 겨자씨가 되길 바라는 고백은, 이번 주보가 말하는 ‘증언’이 거창한 말이 아니라 삶으로 남는 따뜻함임을 보여줍니다.
3. 청소년 특집 – 「청소년을 교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인가, 어려운 일인가?」
(신윤민 요셉 신부, 살레시오회)
살레시오청소년센터에서 법원 위탁 청소년들과 함께 사는 신부님은, 청소년 교육의 핵심을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아는 것에서 찾습니다. 분리수거를 처음 해봤다는 한 청소년에게 “참 잘했다”는 칭찬을 건넸을 때, “오랜만에 어른께 칭찬받았다”는 말이 돌아온 장면은 오래 남습니다.
신부님은 부모와 교육자가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보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어른, 삶의 길을 함께 찾는 안내자입니다. 거창한 교육보다 작은 공감과 칭찬, ‘사랑을 보여주는 일’이야말로 청소년을 살리는 길이라는 메시지가 대림·성탄 시기를 지나온 우리에게도 잔잔한 숙제로 다가옵니다.
4. 성경 – 「전기 형식에 말씀을 담아」
(이우식 베드로, 성서신학자)
2026년 한 해 동안 마태오 복음을 처음부터 함께 읽어 갈 코너의 시작입니다. 이우식 베드로는 복음서가 한 사람의 단독 작업이라기보다, 공동체 안에서 자료를 모으고 엮는 과정 속에 태어났음을 설명합니다.
마르코가 세워 놓은 ‘전기’의 틀 위에 마태오가 예수님의 말씀 전승을 넣어 다섯 설교(산상·파견·비유·교회·심판)로 교차 편집했다는 설명은, 복음서가 단지 기록이 아니라 ‘기쁜 소식’으로 전해지기 위해 얼마나 정성스레 구성되었는지 보여줍니다. 결국 성경 읽기는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그 기쁨을 살아내도록 돕는 길임을 일깨웁니다.
5. 특별면 – 「그대 이름 부르며 안녕!」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JPIC 분과위원장)
정의·평화·창조질서 보전(JPIC)을 ‘그대 이름 부르며 안녕!’으로 풀어낸 시선이 인상적입니다. 수녀님은 새와 나무, 동물들을 ‘자연’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이웃으로 불러 줄 때 관계가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 부르기’는 사람에게도 이어집니다.
통계 속 ‘사망자 1명’, ‘하청·비정규직’, ‘미등록 체류자’ 같은 말 뒤에 가려진 이들의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이 곧 무관심을 거부하고 그 삶의 자리로 들어가 안부를 묻는 연대라는 것입니다. 이번 주보의 주제인 ‘증언’이, 결국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곁에 서는 삶으로 구체화됨을 보여줍니다.
6. K톨릭: 미술 – 「교회와 미술의 동행」
(김현화 베로니카, 숙명 여자대학교 교수)
교회가 미술과 함께 교리를 전하고 믿음을 북돋워 온 역사를 큰 흐름으로 정리합니다. 한국 교회미술 역시 약현성당과 명동대성당에서 시작해, 시대의 감성과 신앙의 언어를 담아 변화해 왔고, 20세기에는 모더니즘 양식의 교회 건축과 당대 미술가들의 참여로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화려함보다 절제와 단순함이 때로 ‘침묵과 검소’라는 복음적 태도와 맞닿아 있다는 설명은, 신앙이 시대와 분리되지 않고 문화 안에서 스스로를 표현해 왔음을 되짚게 합니다.
이번 주 서울주보는 결국 한 문장으로 모아집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증언은 강한 주장보다,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칭찬 한마디, 이름을 불러 주며 안부를 묻는 연대, 그리고 신앙을 담아내는 문화의 노력 속에서 조용히 자랍니다.
일치 기도 주간을 시작하는 이 주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어린양’을 가리키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 이번 주(2026.1.18) 서울주보 PDF는 서울대교구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서울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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